[2024년 가을 숲 밀롱가] 숲에서 핀 탱고의 꿈: 2024 가을 숲 밀롱가 탄생기

1. 갇힌 공기 속에서 꿈꾼 ‘숨구멍’


탱고는 뜨겁다. 사람과 사람이 가슴을 맞대고 서로의 심장 소리를 공유하는 이 춤은, 그 열기만큼이나 밀폐된 공간 안에서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오거 유니야, 나에게는 언제부터인가 그 밀폐함이 갈증으로 다가왔다.

전통적인 밀롱가의 어둑한 조명과 매끄러운 바닥은 집중력을 높여주지만, 때로는 그 완벽함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 아름다운 춤을 사방이 막힌 벽 안에서만 춰야 할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반도네온의 애절한 선율이 에어컨 바람이 아닌, 진짜 숲의 산들바람을 타고 흐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 땀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대신 숲의 흙내음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장면을 꿈꿨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엉뚱한 유니야’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구름 같은 것이었다.


2. 폴(Paul), 그가 건넨 숲의 열쇠


상상은 구체적인 장소를 만나야만 현실이 된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서, 혹은 우리가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탱고를 출 수 있을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운 숲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폴(Paul)이다.

폴은 내가 가진 무모한 상상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본인이 아끼는 소중한 공간, 그 아름다운 장소의 존재를 알려주며 내 꿈에 불을 지폈다. 그를 따라 처음 그 숲에 발을 들였던 날의 공기를 기억한다. 나무들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서 마치 거대한 천연 홀(Hall)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은 그 어떤 인공 조명보다 화려했다.

“여기예요, 유니야. 여기서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폴의 그 한마디는 단순한 장소 제공 이상의 의미였다. 그는 막힌 공간에 갇혀 있던 나의 탱고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준 안내자였다. 장소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아무런 대책도, 구체적인 예산도, 인력도 없었지만 가슴이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무조건 해야 한다. 이 숲에 반도네온을 울려 퍼지게 하리라.’


3. 보석 같은 이방인, 기획자 우주와의 운명적 조우


장소는 정해졌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성격이지만, 축제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예술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고, 동선을 짜고,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세밀한 작업이 필요했다.

그 즈음, 이그녹스(Ignox)에 한 명의 낯선 여인이 찾아왔다. 탱고를 배우기 위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되지 않은 초보 땅게라, 우주님이었다. 그녀는 이그녹스의 커뮤니티에 갓 스며든 참이었지만,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는 남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현업에서 잔뼈가 굵은 보석 같은 ‘기획자’였다.

탱고의 기본 스텝인 ‘살리다’를 배우며 쩔쩔매던 초보자 우주님은, 숲 밀롱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춤으로는 아직 서툴지 몰라도,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눈은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유니야님, 그 엉뚱한 상상을 제가 실현 가능한 축제로 만들어볼게요.”

탱고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그녀가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녀는 탱고 내부의 시선이 아닌, 외부의 신선한 시각으로 숲 밀롱가의 가치를 재정의했다. 복잡한 기획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그녀의 손길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폴이 공간의 문을 열었다면, 우주는 그 공간에 채워질 이야기의 결을 다듬어줄 사람이라는 것을.


4.세 사람의 시너지가 빚어낸 가을의 기적


엉뚱하고 추진력 강한 유니야, 묵묵히 숲의 품을 내어준 폴, 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나 모든 것을 정교하게 설계한 우주.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은 ‘가을 숲 밀롱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다.

준비 과정은 치열했다. 야외 음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숲의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춤추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우주님은 기획자로서 밤낮없이 뛰어다녔고, 폴은 현장의 디테일을 챙겼으며, 나는 그 모든 과정 속에 ‘탱고의 영혼’이 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다.

드디어 2024년 가을, 첫 번째 숲 밀롱가의 막이 올랐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숲으로 모여들었다. 구두 대신 편안한 신발을 신고, 드레스 대신 숲과 어울리는 옷차림을 한 땅게로들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첫 곡이 흐르는 순간, 우리 모두는 깨달았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탱고의 자유가 바로 이곳에 있었음을.

바람이 불면 치맛자락이 바람의 결을 따라 춤췄고, 나무는 흔들리는 잎새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막힌 공간의 답답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대지와 연결된 완전한 해방감만이 존재했다.


5.에필로그: 2024년의 기록, 2025년의 약속


2024 가을 숲 밀롱가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관습에 도전한 ‘유니야’의 모험이었고, ‘폴’이 보여준 신뢰의 결실이었으며, 이제 막 탱고를 배우기 시작한 ‘우주’라는 보석이 우리에게 선사한 마법이었다.

이제 우리는 2024년의 그 눈부셨던 영상 기록을 보며 다음을 꿈꾼다. 한 사람의 엉뚱한 상상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숲을 바꾸고, 춤을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우리는 목격했다.

2025년, 숲은 더 깊어질 것이고 우리의 아브라소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이 길을 함께 열어준 폴과 우주님, 그리고 그 숲에서 기꺼이 함께 춤춰준 모든 이들에게 이 기록을 바친다.

우리는 다시 숲에서 만날 것이다. 바람이 춤추고 나무가 노래하는, 그 눈부신 길 위에서.